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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독후감

수도원의 역사, 최형걸 (살림 출판)

by revival845 2022. 9. 24.

참고: 도서 링크

 

수도원의 역사 - 교보문고

▶은둔과 금욕의 역사 천재적인 작가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고 있노라면, 어둠 속에만 갇혀있었을 것 같은 중세에 생명의 숨결과 거대한 힘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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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해서 절대자 하나님이 가진 진정한 평안과 안식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 자기 자신의 인생을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적인 질서에 들어가고자 했고, 오늘도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 그것을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수도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신성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 신의 평안을 누리면서도 참여의 노력이 주는 고통에 아파하며 신음하는 곳, 이곳이 바로 수도원이다.

 

어릴 적 읽었던 그림으로 된 위인 만화전에서 성 프란체스코(아마도 St. Francis of Assisi)에 대한 내용을 봤던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 생각하기에 조금 우스꽝스러운 머리 모양 때문에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을까. 본인의 성급한 자아와 씨름하면서도 재산을 모으는 것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면 입고 있는 옷마저 벗어던지는 수도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만화로 보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

그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수도원에 대한 내용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시절 교양 수업 과제로 읽었던,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책과 책 내용을 옮긴 영화의 모습인 것 같다.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조금 유치하게도 도서관에서 빌렸던 양장본 책을 분실하는 바람에 반납을 위해 새 책을 구입하려 부족한 용돈을 사용해야 했던 탓이다.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 세트 - 교보문고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로 알려져 있고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신/구교를 막론한) 모든 신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대학을 갓 들어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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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생각하면 뭐랄까, 속세를 등지고 은둔하며 고행을 하는 수도원과 수도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동양에는 절이 있다면 서양에는 수도원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하게 된다. 기실 이 책을 읽으면서 금욕의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오래된 종교에는 공통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런 생각이 이상한 건 아니었구나 싶다.

... 이 모습들은 보통 독신주의, 음식이나 옷 등의 삶에서 필수적인 것을 최소한으로 하는 금욕의 형태, 또는 좀 특별한 금욕의 모습인 순교 등으로 나타났다. 이 모습들은 흔히 거룩한 생활, 경건의 생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 등으로 정리되는데, 이것은 포괄적 의미의 순교로 요약할 수 있다. 원래 죽음으로 자신의 신앙이 옳음을 증거해 보인다는 뜻을 가진 순교는 세속의 권력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순교자들은 극자 그대로 내세의 행복과 영광을 위해 이 땅에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 순교의 개념은 점차 폭넓게 해석되어, (신앙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완전히 드렸다는 뜻의) 세상에 대해 죽은 자, 세상적인 것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삶까지를 포괄하게 되었다. 즉, 금욕적 삶은 순교의 독특한 형태로 이해되었고, 동시에 진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책에서 연대나 사건 순으로 나열하여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록을 바탕으로 먼저는 동방(그리스, 헬라)에서 수도원의 초기 모습을 설명하고 있고 이렇게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수도원이 로마, 이탈리아로 전해지게 되면서 서방교회에서도 수도원이 생겨났다고 한다.

즉, 2~3세기에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주요한 종교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기독교 금욕 이상이 헬라의 전통적 금욕 형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래서 나타난 것이 기독교 금욕자들인 것이다. 헬라식 금욕 전통을 기독교 금욕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아마도 기독교 금욕의 삶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인 하나님이 원하는 완전한 삶을 완성하기 위해 가족이나 인간관계를 끊고(아나호레인), 또 세상의 모든 문화적인 것과 단절(에레미아)하고, 참회와 회개 그리고 기도와 명상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하는 훈련(아스케시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성을 알아가고자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질서와 규칙에 순종하는 수도원 생활은 신앙의 모범과도 같았고, 이들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점차 존경과 영향력을 끼치게 됨을 의미하게 되기까지 했던 것 같다.

수도자(원)의 첫 모습들
... 이들은 보통 천막이나 직접 지은 오두막 또는 무너진 성채나 버려진 무덤, 동굴 같은 데서 살았으며, 그들의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기도와 명상이었다. 그들은 육체노동도 의무로 여겼고, 보통 광주리나 밧줄, 담요 같은 것을 만드는 일을 했다. 노동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단인 동시에, 삶을 위한 최소한의 것을 얻는 수단이자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금욕 수도자는 홀로 은둔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금욕자가 되려는 사람은 보통 이미 명망을 얻고 있는 은둔 수도자에게 찾아가 그에게 지도를 받았으며, 자유롭게 다른 수도자를 찾아갈 수 있었다(금욕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명망 있는 수도자를 찾아가 "스승이여, 생명을 구원할 말씀을 들려주십시오"라는 말로 그 배움을 시작했다.) 안토니우스가 광야 금욕 수도자의 삶을 시작했을 때 역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때에 이미 많은 수의 광야 금욕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 명망 있는 수도자는 자연스럽게 광야 금욕자들의 정신적 구심점을 이루었다. 이렇게 스승이 되는 수도자들의 말은 참 생명을 주는 말로 받아들여졌으며,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스승 수도자들의 영적인 자녀로 여겨졌기 때문에, 스승은 아랍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압바(abba), 여자 스승은 암마(amma)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말은 나중에 수도원장을 뜻하는 용어가 된다.

 

서방교회에서의 수도원은 아일랜드 수도원과 베네딕트 수도원이 대표하는데, 아일랜드 수도원은 전쟁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환경에서 자리 잡아 금욕과 배움의 열정을 강조하는 생활로 번성하게 되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규칙은 로마와 영국, 프랑스 지역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수도원 규칙으로 전해졌으며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서 유럽 수도원의 단일화된 공식 규칙으로 정리되었다. 이는 수도원이 교회 기관이자 국가 기관으로서 연합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한편, 세속 기관이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치적인 성격을 가진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수도원의 타락이 이루어지게 된다.

10세기를 전후한 서방교회의 역사는 혼란으로 점철된 시기이다. 혼란의 내용은 교회권의 타락과 이종족들의 침입이다. 이것은 중세 사회를 질적으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 중략... 7~8세기에는 샤를마뉴에 의해 왕국이 통일되고 안정을 찾았으나 그가 죽은 후 곧바로 바이킹, 마자르, 사라센인들이 유럽게 침입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들의 침입과 노략은 전 유럽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들은 교회나 수도원을 약탈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상황은 교회나 수도원이 그들의 안전을 제후 등 정치 권력자들에게 의탁하도록 만들었다... 후략

정치 권력자들에게 종교권력(?)은 상당히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그것은 반대급부 없이 절대적인 신의 이름으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던 것이다. 전쟁과 질병이 횡행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별로 없던 중세 시기에 사람들은 기도를 부탁하거나, 싸움에 이겨서, 또는 죽을 때 유산의 형태로 재산을 수도원에 기부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대형 수도원들은 막대한 영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약탈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귀족이나 권력자들에게 수도원을 노릴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익에 따라 임의로 수도원을 만들기도 하고 성직매매까지 이루어지게 되는 모습은 수도원의 타락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은 쉽사리 개혁되지 않았는데, 기적과도 같이 클루니 수도원시토 수도원을 필두로 개혁의 바람을 타게 된다.

클루니 수도원은 사회나 교회 등 외적인 부분들, 흔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면, 사토 수도원은 수도자들의 원래 이상인 수도자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길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개혁 이후 11 ~ 12세기에 이르면서 수도원의 세력은 크게 확장되었으나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시대적 문제들과 더불어 더 이상 침묵과 은둔에 머물 수 없게 되었고, 시민계급의 급부상은 새로운 수도원들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

이후 유럽 수도원은 크게 도미니크 수도원과 프란시스 수도원이 주축이 된다. (이 프란시스 수도원의 설립자가 바로 아사시의 프란시스)

프란시스 수도원은 도미니크 수도원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세워졌다. 도미니크 수도회는 처음부터 교황이나 중세 가톨릭 교회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태어났지만, 프란시스 수도회는 말 그대로 일반 민중의 신앙이 수도회로 형성되어 나타난 유럽 민중 고유의 수도원이라 할 만하다. 이 수도회의 설립자 프란시스는 교회의 정치는 물론 수도회의 행정조직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다만 자신의 경건한 생활이 이단으로 오해받고 비난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회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는 카타리나 왈도처럼 개인적으로 복음적 삶, 경건한 가난의 삶을 살고 싶어 했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한 것이 그가 바란 전부였다. 그러나 당시의 제도권 교회와 이단 사이에 있었던 긴장관계를 본다면 홀로 금욕과 가난의 삶을 사는 것이 이단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14~16세기 중세 해체 기를 지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로 수도원은 큰 위기를 맞게 되고 예수회의 등장, 바로크와 계몽 시대를 거치며 합리주의를 내세운 흐름에 의해 세가 몰락하게 되나 익히 알고 있듯 이성에 대한 믿음은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처참하게 무너지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되면서 사회 전반으로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복지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는 수도원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하게 되는 역할을 한다.

... 전략... 자본주의 하의 근대 사회에서 물질적 부가 중요하게 되면서 빈부격차와 가난의 문제가 근대 사회의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사회구조 속에서 국가와 사람들은 수도원과 수도자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그들은 수도자와 수도원이 사는 삶의 방식이 주는 의미, 또 그들의 활동인,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육, 구제, 간호 등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수도원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개신교 내에서도 수도원의 전신과 같은 공동체(형제자매단, 때제 공동체, 라브리 공동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형제 자매단, 때제 공동체, 라브리 공동체 등 개신교에서 생겨난 공동체들은 전통적 수도원 이상의 개신교적 또는 현대적 변용이라 할 만하다. 또한 카톨릭에서 수도회와 수도사적 삶이 부활한다는 사실은 수도사적 삶의 가치가 인간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거해 준다. 이것은 수도원과 수도자의 삶 또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이, 인간이 본성상 갖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희구가 제도화, 형상화된 모습이라는 사실도 잘 보여준다. 수도자나 수도원이 비록 역사적으로 왜곡과 실수, 실패를 갖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의 신성을 향한 노력, 신성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는 계속될 것이고, 굳이 수도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삶의 모습은 간단(間斷) 없이 지속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육체와 물질의 세계를 넘어 거룩함의 신성에 참여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쉼을 얻고자 하는 신성한 욕망은 우리들 모두의 본능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읽었던 '맥주의 세계'에서 수도원이 맥주를 만드는 주요 생산지였다는 사실이 꽤 새롭게 다가왔었는데.. 오늘날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를 보아도 종교적 단체와 정치/사회적 단체 사이의 거리는 적당할 때는 양쪽을 흥하게도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서로에게 해를 끼치거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위험이 늘 존재하는 것 같다. 짧은 내용의 책이지만 여러모로 새로운 점들을 많이 접하고 알게 된 것 같다.

 

책에 소개된 참고 문헌 중 일부를 정리하면서 감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 베네딕트, "베네딕도 수도규칙", 분도출판사, 1991.
  • 아타나시우스, "안토니의 생애", 은성, 1993.
  • 어거스틴, "고백록"
  • 프란시스 쉐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생명의 말씀사, 1995.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