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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독후감

고대 페르시아의 역사, 유흥태 (살림출판)

by revival845 2022. 8. 6.

참고: 도서링크

 

고대 페르시아의 역사 - 교보문고

아케메니드 페르시아ㆍ파르티아 왕조ㆍ사산조 페르시아 | 지금은 비록 서구 문명에 뒤쳐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 세계를 살펴보면 세상을 호령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오히려 페르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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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위키(https://namu.wiki/페르시아의%20왕자)

 페르시아의 왕자는 많이 들어봤는데.. 페르시아의 역사는 잘 모른다.

 

 성경에는 사실 페르시아 왕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뉜 이후로 앗시리아(성경에서는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이후 남유다가 바빌로니아(성경에서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이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의해서 멸망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페르시아 제국이 가장 처음 등장하였고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왕국 중 하인 아케메니드 왕조 이전에 있었던 엘람왕국과 아리안족, 조로아스터교, 메디아 왕조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해서, 아케메니드 왕조를 잇는 파르티아 왕조와 사산조 왕조를 끝으로 제국의 끝을 말한다. 페르시아는 오늘날 이란을 이야기하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한 것이 아니라 이후 이슬람 제국의 토대가 되었음을 밝히며 마무리 짓는다.

 

 그나마 아케메니드 왕조(The Achaemenids, BC 550~BC 330)의 이야기에서는 좀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앞서 말했듯 구약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배경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고, 이 시기의 역사적 사료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제외하고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공부했던 내용과 상당수 일치하기 때문 같다.

실제로 책의 중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성경 역사 vs. 이란 역사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성경의 역사 속에도 이란의 아케메니드 페르시아와 파르티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제45장에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왕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고레스 왕(키루스 2세)과, 에스더의 남편인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1세),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 아닥사스다 왕(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모두가 아케메니드 페르시아의 왕이다. 당시 페르시아의 수도도 구약성경에 언급된다. 에스라서에 나오는 악메다궁(악바타나, 현재 하메단)은 페르시아의 여름에 별장 역할을 하던 여름 궁이었으며, 수산궁(수사, 현재 슈쉬)도 겨울 궁으로 현재 그 역사적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이사야서, 다니엘서, 에스더서, 느헤미야서, 에스라서 등에 나오는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이야기도 실제 이란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페르시아의 왕들의 제국을 다스리는 정책이 각 민족의 신들과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고레스 2세(키루스 2세)는 그의 정책대로 바빌로니아 제국으로 끌려와 이란에 살고 있던 많은 유대인들을 돌려보내주었다. 그는 칙령을 발표하여(에스라 제1장) 유대인들의 귀환을 돕도록 하였으며 원치 않는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고 이란에 남아 살 수 있도록 하였다. 남은 자들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란의 많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성경에 근거한 이야기 외에도 실제 이란에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 다니엘과 선지자 하박국의 무덤 등 역사적 유물들이 남아있어 이란과 유대인과의 오랜 역사적 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구약성경 외에 신약성경에도 이란인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예수가 탄생하는 장면이다. 성경에 동방박사라고 언급된 사람들이 바로 페르시아에서 온 이란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시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인 마기들이다. 점성술에 능했던 이들은 성경에 나온 것처럼 별을 보고 왕의 탄생을 알았고 그 별을 쫓아 이란에서 베들레헴까지 온다. 페르시아의 최고 지식인이자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값비싼 물품을 아기 에수께 선물한다. 이들은 다시 이란으로 돌아가서 후에 예수를 믿고 조로아스터교 제단 위에 교회를 짓고 예수를 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들 중에 한 명이 묻혀있는 우르미예라는 도시에 동방박사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것 외에도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다대오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곳에 세워진 다대오 순교 기념 교회도 미쿠라는 도시 인근에 세워져 있다.
이란 교회사에 전해지기를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고 왔던 마기들이 20여 년이 지난 후에 제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예수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예수가 부활하고 승천한 다음 오순절이어서 그곳에서 성령 강림을 체험하고(신약성경 사도행전 제2장) 이란으로 돌아와 교회를 짓고 복음을 전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 오늘날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 되는 지역인 마라톤에서의 전쟁과 영화 300, 살라미스 해전 등으로 유명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이 아케메니드 왕조 시절에 있었던 일이고 이후 알렉산더에 의해 등장한 그리스 문명에게 패권을 내주고 만다. 알렉산더가 죽은 이후에 휘하에 있던 장군들에 의해 내전이 발생하며 그리스 문명은 급속하게 사그라드는데, 이때를 틈타 이란 역사상 가장 오래 장수한 (500년간 다스림) 파르티아 왕조(The Partians, BC 250~AD 226)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파르티아 왕조는 로마의 팽창 전략과 맞물린 지방 분권정책의 실책에 따른 반란으로 몰락하게 된다.

 

 고대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조인 사산조 페르시아(The Sasanians, AD 226~AD 651)는 아케메니드 페르시아를 계승한다는 대의를 내세워 나라 이름도 페르시아를 넣어서 개국하는데, 당시의 정통성과 정책을 상당수 가져와서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했던 것으로 나온다. 이 시기에는 로마와의 마찰이 자주 발생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유는 단일종교 정책으로 힘을 가지게 되는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아르메니아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종교적 핍박과 전쟁이 자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운이 쇠했을 때에는 빈번한 왕권의 교체에 따라 국력이 약해지고 아랍에 의해 점령당하는 것으로 왕조의 막이 내리게 된다.

 

 참 생소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명칭이나 이름이 눈에 안들어와서 같은 부분을 몇 번을 다시 읽기도 했으나.. 몰랐던 사실을 몇 가지 알게되어서 재미있기도 하다. 그 중 한가지를 예로 들면 사산조 페르시아의 국력이 기울때 쯤에 즉위한 호스로우 2세(호스로우 파르비즈, Khosrow Parviz, 재위 AD 591~AD 628)의 경우 기독교인 로마 공주 마리암과 결혼하였으며, 다른 부인이었던 쉬린(역시 기독교인)과의 사랑 이야기는 『 호스로우와 쉬린』이라는 이란의 사랑이야기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당시의 로맨스 소설같은게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아르매니아라는 지역이 참 많은 분란에 휩쌓였던 것 같아서.. 그 나라의 역사도 따로 보게 되면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후에 기회가 되면 시도해보기로.

 

 

다소 어려웠지만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